저는 동료들과 일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 마음이 가장 눈에 보이는 모양을 갖췄던 건 회사에서 커피를 내리던 시간이었어요. 2년 동안 대략 3,000잔을 내렸습니다. 거창한 프로그램은 아니었습니다. 원두를 갈고 물을 붓는 사이 자연스럽게 일 얘기가 시작됐고, 막힌 문제나 요즘의 기분도 함께 흘러나왔어요. 커피 한 잔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한 사람으로 만나는 시간은 분명히 늘었습니다. 좋은 협업은 회의실 밖의 작은 접점에서도 만들어진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정확한 계산과 이야기는 디자이너가 회사에서 커피 3000잔 내린 후기에 남겨두었습니다.

저에게 디자인은 화면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도 먼저 떠올린 건 '친구들을 어떤 행사에 초대할까'보다 '이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고 돌아가면 좋을까'였습니다. 초대장은 모임의 맥락을 설명하는 첫 장면이 됐고, 자리와 프로그램, 안내와 기록은 서로 다른 친구들이 편하게 만나도록 돕는 장치가 됐습니다. 행사의 한가운데 있는 저희보다 처음 도착하는 친구의 눈으로 순서를 다시 보는 일이 더 중요했어요. 개인적인 행사도 누군가의 여정으로 바라보면 하나의 서비스가 됩니다. 결혼식을 하나의 서비스로 디자인한 과정은 제가 일상에서 경험을 설계하는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인지 제 커리어에는 줄곧 '일하는 사람을 돕는 일'이 있었습니다. Wanted에서는 HR Tech 제품을 만들었고, 동료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더 빠르고 일관되게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인 시스템도 키웠습니다. 사용자만큼 동료의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규칙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들이 그 규칙을 이해하고 함께 고칠 수 있게 만드는 일. 저는 그 역할을 '디자이너를 위한 디자이너'라고 부릅니다. 컴포넌트를 정리한다기보다 함께 일할 언어를 만드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디자인 시스템을 문화로 만든 과정에는 시스템보다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 했던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집니다. 스페인어권 K-pop 팬을 위한 학습 제품 DICO를 공동 창업했고, 작은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과 콘텐츠, 커뮤니티로 연결해 봤습니다. 요즘은 게임의 규칙과 제작 도구까지 만든 The Gate, AI 이미지를 취향과 관찰이 있는 작은 제품처럼 운영한 AI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실험을 이어갑니다. 직접 만들면 결정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됩니다. 무엇을 넣고 버릴지, 어디까지 완성해야 사람에게 닿는지 끝까지 생각하게 돼요. 이 감각은 회사에서 제품을 설계할 때도 저를 더 현실적인 디자이너로 만듭니다.

이런 성향의 뿌리를 따라가면 스무 살의 뉴질랜드가 나옵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 가족과 1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살게 됐고, 그곳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한 나라에서 당연했던 것이 다른 곳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습니다. 돌아온 뒤 영미 문화와 글로벌 커리어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다전공으로 선택했습니다. 스페인어권 사용자를 위한 DICO를 만들고, 지금 LottieFiles에서 여러 나라의 동료들과 창작 도구를 만드는 길도 그때의 관심과 이어져 있습니다. 낯선 배경의 사람과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디자인 문제입니다.
배운 것을 혼자 갖고 있기보다 다른 사람과 나눌 때 더 오래 남는다고 믿습니다. 디자인 커뮤니티 활동을 9년 동안 이어온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Friends of Figma Seoul을 운영하며 6천 명이 넘는 멤버와 20회 이상의 국내외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INFCON을 비롯한 무대에서 이야기했고, 현업 디자이너를 위한 강의와 워크숍도 진행했습니다. 누군가 제가 정리한 이야기에서 다음 질문을 시작하면, 그 일이 다시 제 배움으로 돌아왔어요. 흩어진 지식을 실제 일이 흘러가는 순서로 엮어 『Do it! 실무 순서로 배우는 프로덕트 디자인』을 썼습니다. 책을 피그마로 만들고 출간한 과정 역시 배우고, 정리하고, 다시 나누는 제 방식의 연장선입니다.

돌아보면 커피를 내리는 일, 제품과 시스템을 만드는 일, 결혼식과 커뮤니티를 설계하는 일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모두 사람이 어떤 맥락에서 만나고, 이해하고, 움직이는지를 더 좋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사람을 위한 경험을 직접 만들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품 디자인, 창작 기술, 커뮤니티, 혹은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무언가에 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